본문 바로가기
제품 리뷰

전세대란 집산 썰.ssul / 패닉바잉은 내 이야기였을까? / 어쩌다 집주인

by sso sweet 2020. 12. 14.

집을 사고 파는 일. 누군가가 집주인인지, 평수가 몇 평인지는 사실 민감한 주제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건, 그 부동산이 바로 시세차익이나 투자/투기이슈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 집을 사는 데에 신혼부부는 혜택을 받는 반면, 싱글은...? 물음표가 뜬다. 내가 부동산 정책을 잘 모른다더라도 부동산 기사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집이라는 자산이 누구나 디뎌야할 땅을 담보 삼는 구조인데다. 3월에 발표된 정책으로 누구에게 진 부채인건지도 모를 엄청난 액수가 집의 값으로 결정되고 있었다. 처음 자취할 집을 알아보다가, 집주인이 되고 말았다.


나는 올해 3월, 결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필요한 것중 해결해야할 가장 큰 것은 집이었다. 화성시에 연초 넣어두었던 임대주택에 운좋게 당첨되었고, 한 여름에 그저 그렇게 우리는 화성으로 이사갈 것을 마음먹고 있었다. 13평에 방이 하나 있는, 둘이 살 수 있는 구조의 집이었다. 만약 출산과 육아가 시작된다면 1인분의 공간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므로, 살 곳을 다시 고려해야할 수도 있었다.

 

결혼이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8월쯤, 내가 퇴사를 결정했고, 재택근무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다른 동료들과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직장 출퇴근 거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인데다, 서울에서 웬만하면 편도로 두시간이 걸리는 화성시에 거주한다는 게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급히 다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사실 내가 나선 게 아니라 아빠가 먼저 인터넷으로 부동산을 봐주었다.

 

"전세 없어요~"

우리가 집을 구하러 간 건, 이미 올해 3월쯤 발표된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집값이 스멀스멀...이라기엔 급격하게 오르던 중이었다. 집주인이 전세를 내주지 않고 있다며 방송과 신문 부동산면이 도배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차를 타고 나서서 부동산 몇 곳을 돌았는데, "신혼부부가 살 집 있나요?" 라는 질문엔 망설임 없이 "없어요~ 요새 전세가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지만...

 

차를 타고는 호*노노라는 어플에서 지역을 검색한뒤 20평대 초반짜리 집을 살펴보다 들른 동네. 1억 8천만원짜리 빌라 전세집을 구경했다. 내부 구조는 좁았지만 다세대주택이 모여있는 블럭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갓난아기 1명을 키우는 집이었는데, 안방도 넓고, 1억 8천이라면 계약금 뺴고 모두 대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한달에 월세를 낸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아빠가 이사올 곳 근처에 있었다. 주차 공간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한자리쯤이야 차지할 수 있겠거니 했다.

 

지어진지 20년 이상된, 아주 오래된 집은 가기 싫고, 교통편도 중요하고, 주변에 생활하기 좋은 편의점이나 마트, 공원들도 있어야하고...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를 찾는 이유가 더 절실하게 와닿았다.

 

집을 사는 건 어떤가?

 

"집을 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은 사실 아빠가 가장 먼저 했다. 차를 타고 출발하기 전부터...

 

집을 산다고? 서른 밖에 안 된 내가 집을 자기 소유로 산다고?

 

나에게는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무주택자이자 캥거루족으로 30년을 살아왔고, 주택 구매란 30대 후반에 자리를 정말 잡은 느낌이 들어서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기사에 나온 '30대, 부동산 패닉바잉'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내가 해당되어야 하는지 나에게 되물었다. 처음이니까, '그냥 내가 필요해서 집을 살 수도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쉽게 들진 않았다.

 

토요일 오전 10시, 아빠가 추천해준, 아빠가 이사갈 곳 블럭 아래 동네를 몇곳을 돌아보았다.

북쪽이 서울이랑 가까우니까 남쪽이 더 싸다. 그리고 교통이 안 좋을수록, 아파트 연식이 오래되었을수록 싸다.

 

무주택자로 살면서 아이를 낳으면 청약을 넣을 수 있는데...지금 주택청약 통장에 넣은 금액이 얼마더라...언제부터 했더라. 은행 어플을 켜 다시 하나하나 세어가며 엄마아빠 차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역세권인 한 아파트는 전세도 없는데다 매매가격도 비쌌다. 게다가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살고싶지 않은 아파트 단지도 있었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야지만 나오는 아파트 단지가 10개는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서울에 있는 어떤 곳보다 숨막혀보였다. 나에게 경기도민이 된다는 것의 로망은 여유롭고...좀더 넓은 대지에 있는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해서였을수도 있다.

 

여기다!

 

점심먹기 직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부동산에 들어서서 혹시 전세가 있냐고 물었다. 기대없이 물었는데, 급매로 나온 1층 세대가 있었다. 전세로 가늠한 예산에서 조금 넘게 되는 가격이었다. 엄마아빠와 1층이나 2층에 살아보아서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로비층이 따로 있고 한 층 올라가서 세대가 있어서, 엘리베이터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소음을 전혀 받지 않아도 됐다. 집구경을 할 당시엔 사실 좀 당황했다. 공급 24평이라는 평수가 둘이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을만큼 크게 느껴졌다. (전)집주인이 거실 베란다를 확장해둔채 짐이 많지 않았고, 1층 거실뷰가 단지를 관통하는 느낌이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집을 보고 나오는데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15년된 아파트라 낡은 구석, 곰팡이, 청소할 데도 많았다.

 

오후에 이 집을 보러올 약속만 3개가 있다고 했다. 어디선가 다들 다급히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걸까.

 

희한하게 날씨가 너무 좋았고, 은행나무가 잘 물들어 있었고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고, 사람사는 곳같은 냄새가 났다. 당시에 차는 없었지만 아래로 30분 내려가면 이케아, 코스트코도 있고, 집앞 건너편에 강남역에 한번에 갈 수 있는 빨간 버스가 있었다.


 

무주택자로 살면서 청약을 넣어야 할지, 고민했지만 결국 그게 지금의 나(우리)의 집이 되었다. 이 시기에 갑자기 매물로 나온 이유도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할아버님이 자녀가 모두 근교에 있는데 그곳으로 이사하시기로 결정해서 나온 집이라고 했다. 필요에 의해 집이 매물로 나왔고, 필요에 의해 구매를 계약하게 된 아름다운 성사는 이렇게, 엄청난 대출과 함께 이루어졌다. 계약금을 송금하려니 손이 덜덜 떨리더라. 대출 퍼센테이지는 너무 슬퍼서 여기에 적을 수 없다.

 

결혼식이 두달 정도밖에 안남았는데, 이사를 언제할지 마음만 급했다. 이렇게 급히 집을 구한 신혼부부가 있었을까...호호호. 나의 대책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좋은 집을 만나게 되었다. 퇴직금을 털어 리모델링을 하면서, 언젠가는 나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혼자만의 이별의 기약식을 마음에서 치루었다. 그리고 거의 한달만에 할아버님도 집을 구해서 이사를 가시게 되었다.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 - 교보문고

“누군가가 나를 이 집에서 내보내는 일이 없을 거란 ‘안심’이 필요했다.” 제7회 카카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는 돈이 없는데도 집을 살 수밖

www.kyobobook.co.kr

 

주택을 구입하는 데 '표류기'라는 표현이 붙은 게 일단 슬프지만 나도 단 몇시간 집을 구하려고 돌아다녔던 시간이 표류와 같이 느껴진다. 2년마다 집을 구하러 다니지 않기 위함이라는 부제도 여전히 씁쓸하다. 부동산 공급이 좀더 빨리 결정되고 진행되었더라면...

막 변하는 집값 그래프를 보면서, 안정이란 허상을 떠올린다. '안정'이라는 것이 허상일수밖에 없는 현실에 산다.

 

왜 표류해야하는 걸까. 정해진 처없이 살아가야 할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한 노마드도 아니고,

그저 표류하는 것이 비단 저자뿐만이 아닌 게 지금의 현실이다. 

 

선배들이 집 구한다고 은행대출 받으러 간다고 할 때, 정말 어느 먼 곳에 떠나는 것만 같았는데, 누구나의 이야기일뿐이었다. 캥거루족일 땐 내가 너무 현실에서 멀어져있는 것 같아서 가끔 네이버 부동산 어플을 깔아두고 시세를 구경(?)하곤 했었다. 유현준 교수님이, 사는 곳을 결정할 때는 주변에 카페가 있는지 보라던 말도 생각난다. 전세란 제도는 한국에 밖에 없다는 특이한 케이스라는 것도, 교과서에서나 봤던 이야기...

 

자신의 표류기를 가감없이 내비쳐준 저자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따뜻하고 아늑한 방이 우리에게 숨 좀 고를만큼만 벅차게 주어졌으면...

전에 살던 동네 뒷산. 어제밤에 이동네 나의 방이 꿈에 나왔다. 시세와 상관없이 그리운 나의 집.

 

 

 

 

반응형

댓글